천관산 품 속 농안마을 길을 걸었다

0
801
농안마을 저수지

농안(農安)마을 속으로 들어가니 천관산이 보이지 않는다. 천관산 품속으로 쏘옥 들어온 것이다. 마을 앞 저수지에는 천관산에서 흘러든 맑고 차가운 물이 가득하다.

농안마을은 천관산 계곡수가 풍부해 농사를 편안하게 지어왔다. 산 아래 여러 마을들도 이 물로 농사를 지을 것이다. 시원한 바람이 불고 저수지 건너편 산자락에서 송화가루가 흩날린다.

관산읍 농안마을 돌담

마을 이곳저곳을 걷는다. 오래된 돌담들이 다정하다. 아기·사자·부처바위, 바위들이 봉우리를 형성한 천관산인지라 어느 집 돌담은 커다란 바위로 경계를 삼고 있다. 마을 골목길을 한 참 걸어 다녀도 사람을 만날 수 없다. 산촌에 들어가면 사람 만나기가 참 어렵다. 어쩌다 운 좋게 부지런하고 건강한 할머니들을 만날 수 있다.
이곳저곳 골목길을 걷다가 마침내 봉구나무 순을 따고 있는 할머니를 만났다. 회진면 이회진에서 시집 왔다는 연동댁 김길심 할머니(91세)는 허리는 굽었지만 얼굴이 너무나 맑고 곱다.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귀도 밝으시다.

“왜정 때 열아홉에 시집 왔어. 신랑이 스물다섯이라고 시집 왔는디 서른다섯이여. 시집 와서 보니 산불이 나서 나무가 없어. 백바우 밑에 불난 놈 껍질 가져다 불 때고, 농사짓고 노물도 캐다 묵고 살었어. 그때 신랑이 일본서 대학교를 댕겼어. 같이 일본으로 들어갈라고 한디 일본이 (전쟁에서)저뿌러…할아버지는 폴새 돌아가셨서, 이렇게 삭신이 쑤신디 하나님이 데려갈줄 모르고…”

이 이야기 저 이야기 나누고 있는데 산 쪽에서 한 할머니가 살갑게 내려오신다. 바구니에는 봄나물이 가득하다. 아니, 방촌댁 주옥심(87세) 할머니도 똑같이 허리는 굽었지만 얼굴은 맑은 봄바람이 씻어낸 듯 깨끗하다. 왜 이리 젊고 건강한지 물었다. 방촌댁은 당신이 방금 내려온 천관산자락 저 멀리를 가리킨다.

“앗따, 성님 여그까지 왔소. 쩌리 돌고온께, 젊어지제. 귀신 대갖고 오래만 살먼…머굿대 하러 갖등마 머굿대 밭에 갈 수가 있어야제.”

아, 농안마을 할머니들의 맑은 얼굴의 비밀을 알아버렸다. 산길을 걸으며 맑고 차가운 바람을 들이마실 것이며 해마다 새 싹을 피워내는 늙은 나무들에게 위로를 받을 것이다. 그리고 깨끗한 산나물을 날이면 날마다 먹고 사는 것이다.

여든 아흔 넘으신 어르신들에게 나이를 물어보는 거 참 민망한 일이다. 제 나이를 잊어먹고 사는 할머니들이 당신 나이를 기억한다는 것은 부질없는 회한을 불러일으키기 십상일 것이다. 오늘 만난 할머니들의 얼굴에 맑고 고운 기운이 가득해서 참 좋다.

댓글을 남겨 주세요

Please enter your comment!
Please enter your name he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