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 1920년 장흥 지역 시위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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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흥은 동학의 최후 항전지였다. 동학의 상처는 아들에게 손자에게 함부로 말할 수 없는 원죄가 되었다. 그로 인해 떳떳하게 말하지 못하고 쉬쉬하며 살아야 했다. 일제가 물러나기 전까지 이는 불문률이었다. 그렇지 않으면 몰살당하기 십상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정신, 사문화 되지 않았다. 항일운동 사료를 발굴하는 과정에서 조선총독부 광주지방법원 장흥지청 자료를 뒤져보니 판결문이 여럿이다.

(사)장흥문화공작소는 이러한 문서를 찾아 후대 유족들에게 알리고 보훈처에 국가유공자로 등록하는 데 애쓰고 있다. 솔직히 선행연구자는 물론이고, 연구 후속세대에게 조금이나마 이바지하고 싶은 마음도 있다. 우리가 발굴 번역한 것을 올리는 이유다. 오독, 오역, 미발굴 문서 등에 대한 의견이 있으시거든 언제든지 알려주시면 수정/보완해 나가고자 한다


아래 글은 위의 원문에 대한 해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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