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2년 신의주, 송포 선생과 그의 아들 정종배 독립지사

0
108

왼쭉 부터 송포 선생, 정종배 독립지사

1934년 추석, 장흥군 관산읍 죽교에 사는 아버지는 목포형무소에 갇혀있는 아들 재판을 방청하러 간다. 추석이라 홀로 든 여관 창밖으로 하늘에 보름달이 가득하다. 상심한 백발 아버지는 잠을 잘 수가 없다. 아버지는 아들을 면회하고 돌아오는 목포 용당포 배위에서 바닷물에 눈물을 쏟아낸다.

1937년 출옥한 아들은 아이를 잉태하고 또다시 어디론가 사라진다. 1942년 아버지는 신의주형무소에서 아들이 위독하다는 급보를 받는다. 칠십 노인 아버지는 한강수가 넘치고 온 곳이 번화한 경성을 거쳐 평양을 지나 신의주에 도착한다. 압록강은 밤새 울며 흐른다. 아버지는 신의주에서 장흥까지 병든 아들을 데리고 온다. 죽교에 내려 엎고 집으로 데려온 아들은 며칠 지나 숨을 거둔다.

아버지는 1905년(乙巳) 을사늑약을 당하자「전유금론(田有禽論)」을 지어 을사늑약의 부당성을 강력히 비판했던 유학자 송포(松浦) 정노수(丁魯壽 1877~1965) 선생이다. 아들은 1934년 독립운동 비밀결사 전남운동협의회 사건으로 3년여의 옥고를 치르고 출옥한 이후 독립자금을 모집하여 국경을 넘나들다 다시 체포되어 신의주감옥에 갇혔던 정종배(丁鍾蓓 1913~1942) 독립지사이다.

어제 장흥문화공작소 황희영, 서선미 두 분과 장흥군 관산면 죽교리 내학마을에 가서 『松浦遺稿』의 존재와 마을어르신들의 구술로 정종배 선생의 독립운동을 더욱 폭넓게 확인할 수 있었다.


二千餘里義州行鴨綠江流日夜鳴七十老夫何事到天倫至重一身輕

– ‘過新義州’(『松浦遺稿』 시편에서)

이천여 리 멀고 먼 의주 가는 길

압록강도 밤낮으로 흐르며 우는구나

칠십 늙은 몸이 무슨 일로 예 왔는고

이 한 몸보다는 천륜이 중해서라네

– 의주에 가다(번역 정춘자)

댓글을 남겨 주세요

Please enter your comment!
Please enter your name he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