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안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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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컨텐츠에 대한 말을 자주 듣는다. 어느 말에나 정해진 답은 없지만, 편의상 이를 ‘문화기호들의 연쇄적 조합이 창출한 결과물로, 커뮤니케이션의 다양한 채널을 통해 상업화될 수 있는 재화'(백승국)라고 본다면, 이것은 확실히 이전의 산업사회가 추구했던 재화와는 판이하게 다른 것이다. 우리는 이 문화컨텐츠 산업의 조밀한 자장 안에서 살아가고 있으며, 그것은 사회 각 부문에 변용되어 적용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그것을 잘 알아차리지 못하는 까닭은, 쉽게 가늠하기 어려운 그 복잡다난한 융복합적 성격과 감성, 특히 예술 분야와 깊은 관계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한류나 게임, 케릭터 산업 같은 분야에 종사하는 전문가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넓게 봐서 그것은 문화유산, 생활양식, 창의적 아이디어, 가치관 같이 생활 주변에 실재하는 요소들을 조합해서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참여정부 때 지방분권화 정책의 일환으로 그 국가부서의 본원인 ‘한국콘텐츠진흥원’이 지금 인근 나주에 있다. 아쉽게도 그 원장이 지금 국정농단의 주역이 되어 구속되어서, 민주주의를 대의로 하는 국가체제의 꼴만큼이나 우습게 되어 있지만, 그 존재 자체가 무의미한 건 아니다. 근래 광주와 전남이 어떻게 해서 문화를 중심축으로 한 발전계획을 세웠는지 알 수 없지만, 어쨌든 광주는 ‘아시아문화전당’을 중심으로 한 문화도시를 지향하고 있고, 전남도도 전남문화관광재단의 확대개편과 ‘르네상스 전남’ 정책 등을 통해 이 분야에 상당한 중점을 두고 있다.

하지만, 나는 지금 이런 시대 흐름이나 정책방향 같은 걸 피부로 실감하지 못하고 있다. 이유는 여러 가지일진데, 아마도 그중 하나로 나는 촛불민심에 크게 기대하고 있지만, 이내 허망하게 귀결되고야 말 것만 같은 민주주의를 향한 갈망처럼 나 또는 우리가 너무 능동적이지 못한 타성에 젖어 있지 않은지 자문해보곤 한다.

해안선. 나는 늘 내가 살고 있는 강진과 인근지역이 어떤 강한 유사성을 갖고 있다고 생각해보곤 한다. 고흥, 보성, 장흥, 영암, 강진, 해남, 완도, 진도와 같은 곳이 그곳이다. 반도의 서남해안, 여느 지역에 비해 바다의 삶에 근접해 있고, 목포나 여수 같은 소도시들과도 비켜선 곳이다. 사람들의 살림살이나 정서, 여러 문화사업이 펼쳐지고 있는 모양이나 행정기관의 운영도 근접해 있어선지 많이 닮았다. 근래 또 대규모 풍력발전단지를 세우려 하는 곳도 이곳이다.

이 지역이 갖고 있는 역사, 문화, 자연, 지리적 특성은 가히 반도에서도 특징적인 것들이다. 다른 요인들도 많지만, 지리적으로 중심인 수도 서울에서 먼 곳이기 때문에 교통이 불편하고, 너무 먼 섬들의 분포는 시대변화의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게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로 그랬기 때문에 이곳이 갖고 있는 보석 같은 장점들은 얼마나 많은가? 이곳은 개발에서 뒤쳐졌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파괴되지 않고 깨끗한 자연환경, 문화유적과 사람살이의 모양들이 온존하고 있다.

이런 문화적 특성은 컨텐츠를 만들어내기에 더 없이 좋은 환경이다. 그럼에도 그것은 주체적 노력 없이 이뤄지진 않을 것이다. 한편 문화적 논의에서 일반성과 특수성은 동전의 양면과도 같아서 어느 한쪽만이 강조되어선 곤란하다. 이 지역 바깥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특수성은 의미가 없고, 타 지역이나 지구촌 어디에나 있는 것도 마찬가지다. 귀촌인들과 토착민, 전문기능과 일반적 생활, 자발성과 주변의 지원 같은 여러 차별적인 것들의 융합, 화음 같은 것들이 있어야 실속 있는 컨텐츠를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다.

‘재화’라는 말이 부정적으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다. 실재하는 어떤 것에 앞서 사람에게 필요한 그 무엇 또는 돈을 만들 수 있는 그 무엇으로 말이다. 그래서 문화컨텐츠는 산업이라는 말과 자주 어울려 사용된다. 보다 넓은 의미로 봤을 때, 모든 것이 상품으로 귀결되는 현상이 마뜩찮지만, 자본이 가치척도의 주요한 기준이 된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가 그것을 뭉뚱그려 부정할 순 없는 노릇이다.

한 사회가 변화하는 동력은 중심에서보다 주변에서 구해지는 경우가 많았다. 관습과 관행은 기존의 체제와 생활방식을 답습하기 십상이다. 반면 주변에서부터 시작된 작은 변화, 새로운 태도와 생활방식이 늘 중심의 생활체계를 변화시켰다. 통일신라 시기의 장보고, 려말의 백련결사, 선말의 동학농민전쟁은 그런 우리들의 이정표다. 육지의 반대말이 바다라면, 물은 수수만년 흐르면서 각 진 바위산을 날라 해변의 부드러운 모래사장을 만들었다.

윤정현, 에세이스트

강진 군동 금곡사 앞에 있는 미끄럼바위. 3미터 정도가 매끄럽고 반들반들하게 패인 이 바위는 수백년 전부터 여기에 살았던 어린아이들의 놀이공간으로 쓰였을 법 한데, 어느 문헌에서도 이에 대한 언급은 찾아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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