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토종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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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를 때때로 묻게 된다. 물음의 자락을 밟아나가다 보면 여전히 많은 이들이 ‘사랑과 노동’으로 살아간다는 생각에 이르곤 한다. 사랑을 쏟을 대상, 지극한 마음으로 기르고 보살필 ‘노동’의 대상이 없는 인간의 삶은 오히려 버겁다. 누군가에게 이런 삶은 아무것도 아닌 삶일 수도 있다. 산다는 건 관계를 짓고, 그 관계에 몸과 마음을 기울이는 일. 저 홀로 존재할 수 없으므로 사람(人) 사이사이(間)의 그 무수한 관계 앞에서는 당연지사고 자연을 비롯한 만물 앞에서 우리, 인간이란 종이 겸애함으로 조화로운 노동을 묵묵히 이어나가야 함을 새기고자 되풀이해 이렇게 묻게 되는 것도 같다.

자식들을 향하는 사랑만큼이나 논밭의 온갖 작물은 물론 산야의 갖가지 식물부터 집에서 기르는 짐승 낱낱에까지 마음을 쏟아 거두며 평생을 살아온 아짐들을 만나는 시간은 그 생의 자비로움을 배우고 새기게 해주는 종요로운 시간이다. 기도하는 심정으로 하루하루를 엮어 노년의 나이에 이른 아짐들의 그 곡진한 사랑과 노동에 힘입어 아이들이 무럭무럭 자라났고 들판의 곡식들이 여물어갔으며 집 안팎의 개와 고양이와 닭이며 돼지가 토실토실 살쪄 갔다.

한치마을로도 불리는 유치면 인암마을에 사시는 철애아짐(정정자 님)은 당신이 오래전부터 돌보고 거두어온 집 근처 딸기밭의 토종딸기만큼이나 단아하고 고운 분이다. 스물한 살 때 나주에 있는 철애라는 지역에서 이곳으로 시집와 올해 여든이 되셨으니 벌써 육십갑자의 해가 흘렀다. 농사짓기가 결코 수월하지 않았을 것 같은 두메산골에서 밭농사에 논농사만으로는 7남매를 키우기가 버거웠는지 한창 아이들이 커가던 시절에는 농사에 보태어 억새며 산죽을 채취해 팔아서 생계를 이어가기도 하셨다고 한다.

지금은 서울에서 살던 아들이 내려와 아짐과 함께 살고 있다. 아재는 9년 전 세상을 여의었다. 복돌이, 진돌이, 얼룩이라는 이름을 지닌 개 세 마리와 고양이 두 마리까지 거두어 함께 살아가는 댁에 들어섰다. 집만 봐서는 외관상 아짐의 신혼시절과 크게 달라지지 않았을 법한 그야말로 ‘옛집’이다. 60년도 더 된, 빛바랜 세월이 집안 곳곳에 켜켜이 스미어 있다. 저 집에서 한때 열 명 가까운 식구들이 북적거렸던 것이다.

툇마루 가까이 갔을 때 먼저 눈에 들어온 건 흙벽에 걸려 있는 옥수수가 담긴 망사 자루였다. 정확한 이름은 알 수 없으나 해마다 받아서 심어 오신 거라고 하셨다. 이제껏 내가 봐왔던 토종옥수수와 달리 알갱이가 굵고 흰색에 가깝다. 찰져 보인다. 자루를 내려 옥수수를 들여다보고 있자니 다른 씨앗들도 가져 오신다. 이제 기력이 쇠해 논농사는 아들만 짓게 하고, 당신은 손을 놓으셨지만 여전히 일구고 있는 밭이 있어 해마다 심고 받아온 씨앗들이라며 꺼내 보이신다. 옥수수에 시금치며 쑥갓… 씨앗들이 신문지며 검정비닐봉투 속에 빼곡하다. 작지만 옹골차 보이는 토종딸기도 플라스틱 소쿠리에 담겨 마루에 놓여 있다. 사람이든 작물이든 그 대상이 뭐가 됐든 정성껏 대하며 살아왔을 아짐의 삶을 마주하는 것도 같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는 철애아짐을 만나고 돌아서 나오며 되뇌던 말이기도 하다. 한순간 이 말이 떠올랐던 것이다. 짐승들도 제 대하는 품을 모조리 다 느끼며 반응한다는 말씀을 내내 들려주시던 아짐이다. 정과 자비를 속 깊이 품고 노동하며 한평생 산다는 건 저런 거구나… 문득 고개를 끄덕였던 것도 같다. 늙어 간다는 것이 충분히 기꺼울 수 있음을 배운 시간. 토종에 관한 이야기를 들으러 갔으나 오솔길처럼 이어져 펼쳐지는 당신 살아온 얘길 듣느라 정작 이 이야기는 충분히 듣지 못했지만 나눠주신 그 따스한 삶의 기운에 물들어 맘이 차오르던 훈훈한 한때였다.

길날(농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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