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낌없는 가을 전어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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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염과 열대야의 기록을 연일 갱신하며 1973년 이래로 가장 더웠다는 8월을 뚫고 나와

9월이다. 제 아무리 센 모기도 지금쯤 입이 비뚤어졌을 것이다. ‘땅에서는 귀뚜라미 업혀오고, 하늘에서는 뭉게구름 타고 온다.’는 처서를 지나면서 아침저녁으로 이불을 당기고 있으니 말이다.

어쨌든 ‘가을을 이기는 여름은 없다.’는 진리가 유효하니 감사할 일이다.

강촌에 가을이 드니 고기마다 살쪄 있다.
닻 들어라 닻 들어라
넓고 맑은 물에 실컷 즐겨 보자
찌거덩 찌거덩 어야차
인간세상 돌아보니 멀도록 좋다.

윤선도의 어부사시사(漁父四時詞), 추사(秋詞)에서

2016년의 혹독한 여름을 통과한 이들이여!

이 가을 윤선도가 노래한 살찐 고기 한번 구경해보자.

무슨 공식인 듯 ‘봄 도다리, 가을 ○○’

이 대목에서 누구라도 떠올릴 국민생선. 바로 전어다.

전어와 관련된 속담은 하도 들어 식상할 지경이니 생략한다 해도,

전어를 대놓고 노래한 시인까지 그것도 몇씩 있는 걸 보면

전어만큼 한 계절 모든 이들의 사랑을 받는 생선이 또 있을까 싶다.

이쯤 되니 그 유래가 궁금하다.

왜 전어인가?

정약전은 ‘자산어보’에서 전어를, ‘화살 전’자를 써 전어(箭魚)로 표기했고, 서유구는 ‘난호어묵지’와 ‘임원경제지’에서 ‘돈 전’자를 써 錢魚로 표기했다. 서유구는 그 이유를, ‘상인은 전어를 염장해 서울에서 파는데 귀천(貴賤)이 모두 좋아한다. 또 그 맛이 좋아 사는 사람이 돈을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전어’라고 했다고 설명하고 있다.

다시 말해 전어에 돈 전 자가 붙은 것은 그 맛이 너무 좋아 돈도 아깝지 않은 물고기이기 때문이란다.

참고로 내 별명은 네로, 황제가 아니고

검은 고양이. 고양이가 드디어, 마침내 전어를, 전에를 만났다.

고양이 앞에 생선을 던진 이는 장흥군청 부근에서 횟집을 운영하는 강기원(57)씨.

마량에서 잡은 고기를 장흥터미널 세꼬시 집 등에 중개해주던 그가 우연한 계기로 이곳에 자리를 잡은 지 18년째란다.

그의 전어이야기와 삶을 잠시 들여다보았다.

전어는 남도에서는 보성 율포, 득량만 등에서 주로 잡히는데, 그는 떼로 몰려다니는 전어의 특징을 이용해 잡았다고 한다. 일명 뻥치기라 하는데, 배로 그물을 미리 쳐놓고, 배를 뻥뻥쳐서 전어를 불러들인 다음 잡는 방법이다. 국민생선답게 많이도 잡혀서, 그의 말로 ‘한다라이에 천원, 500원에 한바께스’에 팔려 그때는 돈이 안됐지만 지금은 돈이 된다고. 비쌀 때는 한 마리에 2천원까지 올라간다고 하니 가히 ‘전어’다.

옛날에는 전어 ‘한다라이’를 갖다 주고 양식으로 바꿔 먹고는 했단다.

사실 달리 국민생선이겠는가. 여름 끝자락에 ‘비실비실’해진 서민들이, 싸고 흔하니 알게 모르게 먹고 전어로 영양보충을 해, 가을을 나고 또 겨울을 나는데 한몫 톡톡히 했을 것. 사랑받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또 한 가지 어부들의 삶의 지혜가 엿보이는 대목이 있다, 지금은 기술 등 많은 것들이 발전해서, 성질이 급해 잡아 올리는 즉시 죽던 전어도 산채로 잘 유지하지만, 그때만 해도 대부분의 전어들이 잡는 대로 죽었단다. 그런데, 죽어가는 전어도 살리는 방법이 있었으니, 민물을 섞어 염분농도를 조절해 죽어가는 전어를 살렸던 것.

다 죽은 전어도 살리는, 사람 좋아 보이는 그에게도 누구나 그렇듯 힘든 시절이 있었다. 더 어렸을 때를 생각하면 배고픔의 기억 밖에 없단다. 장흥의 국악협회를 처음으로 만드신 분이 그의 아버님이시라니, 좋게 말하면 예술가인 아버지를 두었지만, 함께 사는 가족들에겐 한량이셨을 것, 어머님의 고생은 또 어떠셨을지 안 봐도 알 것 같다. 그의 이야기는 그가 운영하는 싱싱한 횟집으로 가면 더 들을 수 있다.

다시 전어이야기로 돌아와서 전어는 ‘머리끝에서 발끝까지’버릴 데가 없다.

회는 비늘을 긁어내 뼈째 썰어 먹고, 구이는 통째로 석쇠에 올려 구워 먹는데, 전어 기름이 씹을 때 고소함과 구울 때 특유의 향내를 더하니 오죽하면 집 나간 며느리가 그 냄새 맡고 돌아온다고 했을까. 회가 익숙지 않은 사람에겐 무침도 있다. 갖은 양념을 해 새콤달콤 무쳐 먹기도 한다.

아, 느닷없이 영화 ‘양철북’의 한 장면이 떠오른다. 한 여인이 고등어처럼 생긴 생선을 생으로 통째 입에 넣는. 맥락은 다르겠지만 전어를 머리부터 통째로 먹는 이도 있다는데 지극한 전어사랑인가.

아직 남았다. 전어는 회나 구이, 무침 외에 젓갈로도 담가 먹는다.

전어 새끼로 담근 엽삭젓, 내장으로 담근 전어속젓, 그리고 내장 중 위만을 모아 담근 전어 밤젓(돔배젓)등이 있다.

전어는 동해 일부, 통영· 남해· 광양 ·사천 ·보성 등 남해 중서부, 목포· 부안 ·서천 등 서해에서 많이 난다고 한다.

남해에서는 8월 중순부터 나오기 시작하며

서해에서는 이보다 조금 늦은 8월말부터 나온다고 하니

추석 때 가족끼리 모여 전어를 낚아 보는 건 어떨까.

시인 정일근의 시를 빌면 ‘사람의 몸에서도 가을은 슬그머니 빠져나가는 법이니 그 빈자리에 가을 전어의 탄력있는 속살을 채’워 봄이 어떨까.

아낌없는, 가을 사랑을.

글 황희영 사진 엄길섭

1개의 댓글

  1. 봄 도다리 가을 전어… 드디어 가을이니 전어 한 접시 먹으러 가야겠네요. 좋은 글 잘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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