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작교 없어도 노둣돌이 없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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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향교서원문화재활용사업(장흥문화원 주관)과 고전인문학강좌(장흥향교, 장흥문화공작소 공동 주관)를 결합한 ‘문림의향 장흥향교 문화콘서트’ “500년 은행나무 아래서 이어가는 장흥향교 가을이야기” 11월 6일(토) 오후 2시부터 장흥향교 명륜당 앞마당과 천도교 장흥교당에서 펼쳐져

장흥향교에는 500살 드신 은행나무 두 어르신이 살고 있다. 두 어르신은 늦가을이면 은행잎을 샛노랗게 물들여 바람에 흩날리며 우리를 유혹한다. 장흥 사람이라면 한두 번은 그 매혹적인 풍광을 사진에 담았을 것이다.

2019년 11월 6일 장흥향교, 은행잎은 이제야 노란 기운을 담아가는 중이었다. 아직 은행잎이 파랗던 초가을 행사를 준비하면서 장흥향교 김종관 전교님과 장흥문화원 고영천 원장님이 옥신각신 했더랬다. “아, 그때나 돼서야 은행잎이 노랗게 물든단 말이시” “은행잎 다 떨어져불먼 실로 꿰매든 매달아 놓시오” 두 양반의 옥신각신을 들었는지 은행나무 두 어르신이 누구의 손도 들어주지 않고 심술을 부린 것이다.

어찌되었든 장흥향교 명륜당 앞마당에서 문림의향 문화콘서트가 펼쳐진다. 장흥향교 마당에 학생들과 중장년 여성과 남성들, 연세 많으신 어르신들이 함께 모인 자리는 매우 드문 일일 것이다. 더구나 격식을 중히 여기는 향교에서 춤과 노래와 웃음소리가 한데 어우러진 공연이 열린다니. 하지만 심술을 좋아하는 은행나무 두 어르신이 만류하여 ‘가무악歌舞樂’ 공연은 향교가 아니라 화살 한바탕 거리의 천도교장흥교당에서 펼쳐졌다.

문화콘서트 시작에 앞서 2019 제21회 장흥문예백일장 및 제 17회 그림그리기대회의 시상식이 상장을 받을 관내 초, 중, 고등학생들과 학부모들이 참석한 가운데 진행되었다. 이후 곧바로 귀여운 꼬마 도깨비들과 공자님이 등장하여 향교 이야기로 문을 열었다. 장흥향교와 장흥의 역사문화 바로알기 퀴즈는 학생들과 어르신들이 금방금방 맞추며 재미있게 진행되었다.

유생복을 입고 명륜당 앞마당에 선 이향준 선생(전남대 철학과)은 `그들도 우리처럼 _16세기 호남사림의 흥망`이라는 주제로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명륜당 주련을 차례차례 풀어내면서 춘풍春風에 주목했다. 모든 생명을 일깨우는 것이 따뜻한 봄바람이라고, 유학의 근본은 따뜻함이라고.

자리에 함께한 남녀노소 누구나 알아듣기 쉬운 설명으로 이야기를 이끌어가던 선생은 국문학사를 다시 쓰게 한 <관서별곡>의 비밀도 풀어냈다. 처음에는 동생 옥봉 백광훈의 작품으로 알려졌으나 1960년대 우연하게 기봉집이 발견되면서 형 기봉 백광홍의 작품으로 정정되었다. 옥봉과 친구였던 송강 정철은 기봉의 <관서별곡>의 영향을 받아 <관동별곡>을 짓는다. 그러니 <관서별곡>이 기행가사의 효시다. 과거 지역의 역사문화를 알아보고 현세의 지역사회 흥망에 대한 타개책도 알아보는 뜻깊은 강의였다.

문화콘서트 2부는 사회를 맡은 꼬마도깨비들의 진행으로 천도교 장흥교당에서 전통적인 흥과 현대적인 세련미가 어우러진 축제 한 마당으로 벌어졌다. 멀리 억불산 미륵불바위(며느리바위)를 곧바로 쳐다볼 수 있는 자리에 위치한 천도교 장흥교당 마당에서 춤과 소리와 노래가 흥겹게 펼쳐지면서 모두가 가을 속으로 빠져들었다. ‘가을의 기도’는 청명한 하늘에 두 손을 모으고,

가을에는 기도하게 하소서…….

낙엽(落葉)들이 지는 때를 기다려 내게 주신 겸허(謙虛)한 모국어(母國語)로 나를 채우소서. 가을에는 사랑하게 하소서……. 오직 한 사람을 택하게 하소서. 가장 아름다운 열매를 위하여 이 비옥(肥沃)한 시간(時間)를 가꾸게 하소서. 가을에는 호올로 있게 하소서……. 나의 영혼, 굽이치는 바다와 백합(百合)의 골짜기를 지나, 마른 나뭇가지 위에 다다른 까마귀같이.

- 김현승 <가을의 기도> 전문

다음은 행사를 마치며 따온 인터뷰 몇 꼭지.

이 행사를 주관한 장흥문화원은 2019년 향교서원문화재활용사업으로 학생들과 함께 지역의 역사문화교육을 진행했다. 고영천 장흥문화원장은 “아이들과의 교감은 언제나 좋아요. 아이들의 미래를 위한 예절문화를 활성화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어려서부터 예절문화를 익혀야 하기에 내년에도 교육이 이루어지길 바라고 그렇게 되도록 노력하겠다”고 소회를 밝혔다.

장흥문화공작소는 2019년 창립하여 ‘동학문화제’ ‘운주마을문화제’ 등 많은 행사를 기획하여 지역문화예술인들과 함께 자리를 만들어 왔다. 불철주야 달려온 이웅기 장흥문화공작소 이사장은 “올해 1월 창립하여 부지런히 달려왔음에도 부족함이 많습니다. 차근차근 준비하여 내년에는 더욱 알찬 내용으로 문화공작소를 이끌어 보겠습니다”고 했다.

장흥향교는 장흥문화공작소와 공동주관으로 10회에 걸쳐 <2019년 고전인문학 논어 강좌>를 열었다. 향교 어르신들과 문화공작소 청장년들이 함께 공부하였다. 오늘 마무리로 즐거운 콘서트를 열었는데 감회가 어떠신지 장흥향교 김종관 전교에게 물었다. “내년에도 좋은 취지의 프로그램으로 이어가길 바랍니다.”

요즘 장흥에서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가야금연구소 ‘에움’ 서혜린 대표의 이야기도 들었다. 얼마 전 가야금연구소 ‘에움’에서 한 공연과 오늘 천도교장흥교당 공연을 비교했다.

“지난번 공연은 기획자로써 임했고 오늘은 연주자로 참여했다는 차이가 있겠네요. 무대에서 보여드리고자 한 부분에 최선을 다했습니다. 굳이 비교를 한다면 에움은 무대 완비가 되어 있어 수월한 면이 있었고 이곳도 주변 경치가 훌륭하여 야외 공연장으로써의 가능성은 손색이 없어 보입니다.

” 또한 예술단 ‘결’ 안치선 상임연출가는 “아주 좋습니다. 자연스러우면서도 공연자들의 특성 또한 잘 살렸다고 생각합니다. 이곳 천도교당은 무대가 따로 필요 없을 정도로 최고의 공간이었고 훌륭했습니다. 같이 툇마루에 앉아보는 공연이야 말로 우리의 자연스러운 문화의 한 부분이니까요.

“어찌하다 보니 향교에서 주최하는 공연을 천도교당에서 하게 되었어요. 125년 전에는 대립하던 관계였단 말이에요. 아까 공자(공자 분장을 한 연기자)가 여기로 왔자나요. 가깝고도 먼 곳이라고……. 우리는 125년 지났으니까 좀 더 가깝게 지냈으면 어떨까, 하는 마음으로 가을을 맞이하며, 서로 사랑하며, 그런 것을 바라며 기획해봤습니다. 거창하게 말해 문화적, 역사적 사건인거지요. 향교와 동학이 만났으니…”라고 말했다.

그러고 보니 오늘의 만남은 남과 북의 염원을 닮은 것도 같다. 시인 문병란이 1976년 《심상》지에 발표한 <직녀에게>를 되새기며 유학과 동학이 해원상생으로 이어지기를 바라본다.

이별이 너무 길다
슬픔이 너무 길다 
선 채로 기다리기엔 은하수가 너무 길다. 
단 하나 오작교마저 끊어져 버린 
지금은 가슴과 가슴으로 노둣돌을 놓아 
면도날 위라도 딛고 건너가 만나야 할 우리,
 
선 채로 기다리기엔 세월이 너무 길다. 
그대 몇 번이고 감고 푼 실올 
밤마다 그리움 수놓아 짠 베 다시 풀어야 했는가. 
내가 먹인 암소는 몇 번이고 새끼를 쳤는데,
그대 짠 베는 몇 필이나 쌓였는가?
 
이별이 너무 길다
슬픔이 너무 길다 
사방이 막혀버린 죽음의 땅에 서서 
그대 손짓하는 여인아 
유방도 빼앗기고 처녀막도 빼앗기고 
마지막 머리털까지도 빼앗길지라도 
 
우리는 다시 만나야 한다 
우리들은 은하수를 건너야 한다 
오작교가 없어도 노둣돌이 없어도 
가슴을 딛고 건너가 다시 만나야 할 우리 
칼날 위라도 딛고 건너가 만나야 할 우리 
이별은 이별은 끝나야 한다 
말라붙은 은하수 눈물로 녹이고 
가슴과 가슴을 노둣돌 놓아 
슬픔은 슬픔은 끝나야 한다, 연인아  
 

<마을기자 박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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