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보다 낯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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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5. 20 ~ 21, 장흥에 갔던 이야기

중간에 우리는 노래를 불렀다. 그런 밤의 노래가 모두 그러하듯이 오래된 기억들을 더듬는 노래였다. 목소리와 목소리가 부딪히며 보름이 막 지난 달빛이 우리에게 깃들어오기를 손을 내밀었다. 그래서 <오래된 숲>에서 머문 기억이 서로에게 오래도록 침윤되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

우리가 장흥에서 만난 사람들은 모두 손을 쓰는 사람들이었다. 손을 쓰는 사람들은 사실 우리와 공유되는 지점이 그렇게 많지가 않았다. 우리는 기껏 컴퓨터의 자판을 두드리고 스마트폰의 터치기능을 만지작거리며 세상과 소통하는 사람들이었다. 반면 그들은 손으로 세상을 살아가고 세계를 이해하려는 사람들이었다. 머리와 말은 그 다음이었다.

그래서 그들에게서 들은 어떤 말들은 우리의 말을 낯설게 만들었다. 손을 쓰는 사람들이 풀뿌리 민주주의 실현의 전면에 나서길 바라는 말은 그나마 친숙한 테제였다. 물론 그 말을 실천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손이 몇 번이나 쥐고 폈을 빈주먹을 상상하는 것은 어렵지만 말이다. 밥상에서 만난 사람들과의 대화에서 ‘밥상을 자기 손으로 만들었냐 만이 아니라 그 재료들이 어떤 과정을 거쳐왔는지에 대한 근본적 의문이 있어야 된다는 말’은 우리를 낯설게 만들었다. 도시에서 살아가고 스마트폰으로 공부하는 우리에게, 다국적 기업에 의해 쓸모없는 존재로 전락한 과거의 농법과 토종종자는 참으로 먼 나라의 말들이었다. 그래서 토종종자들의 <씨앗도서관>을 준비한다는 <느림보공방>의 말을 우린 진정 마을운동의 중간거점으로써 말과 말의 기억이 저장된 도서관으로 이해하는 웃지 못할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하였다.

그럼에도 그들의 손은 우리를 환대하느라 분주했다. 우리의 말이 준비가 안 되어 있을 뿐이었다. 직접 캐온 바지락과 채소로 밥상을 차리고, 뜨뜻한 군불로 방을 지피고 이부자리를 살펴주고, 장난스런 열정으로 가득한 물건들을 내놓은 장터에 폼 잡는 손님으로도 머물게 해주고, 몇 번의 실패를 통해 터득해가는 미완의 전환기술에 대해 허물없이 이야기를 나누는 환대의 자리를 만들어주었다.

그들의 손과 우리의 말이 서로 낯설고 기억의 공유가 많지 않아도 서로를 환대하는 익숙한 손짓은 지금-이곳에 대한 희망의 의지 때문이 아닐까? 그런 의지에 전염된 우리도 도시의 방식과 다른 삶에서 빚어진 여유로운 만남을 오래된 이불과 같이 편안하게 마주할 수 있었다.

편안함 속에서 우리의 이야기는 현장에서 살아가는 활동가들과 이론을 탐구하는 이론가들과의 만남이 자주 있어야 된다는 합의점으로 모아졌다. 현장의 수많은 정념들과 노래들은 사라지고 언어로 정제되지 못하는 순간 그들은 다른 이들과 기억을 나누질 못한다. 종종 불행히도 잊혀져버리기도 한다. 또, 그렇다고 무턱대고 언어의 위력만을 으스대며 그들을 기록하는 것은 하니만 못하는 일일 것이다. 늘 돌아오는 회의의 순간. 그들을 우리는 어쩜 다른 방식으로 착취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장흥을 배경으로 한 이청준과 임권택의 <축제>에선 작가인 주인공에게 고향을 팔아 사회적 명성을 차지한 자라며 도발하는 용순이란 인물이 나온다. 우리도 여행자의 약탈적 시선으로, 과부하 걸린 이론가의 지적 탐미주의의 출구로 현장을 이용만하는 것은 아닐까?

<마실장>에선 노래와 춤판이 벌어진다. 열 몇 살 조무래기 아티스트와 스님, 보리대춤과 같은 여인네의 춤사위가 장터의 흥을 흐드러지게 만든다. 기타와 젬베를 능수능란하게 다루는 어린 아티스트와 스님, 거기에 여인네의 조합이라니. 내년부터 <마실장>에 거액의 국비지원이 결정되었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도 기대감도 밀쳐놓고 그들은 지금-여기의 노래를 부른다.

그들이 부르는 노래와 춤판을 우리는 저만치 바라만 보고 있다. 사랑의 두려움.

노래가 끝나면 닥쳐올 절망의 격랑에 몸을 던질 수 없는, 주저하는 우리들. 굳이 우리까지, 우린 기록해야 되잖아. 춤을 추면 날아가 버릴 거야, 우리가 배워온 언어들이.

새로운 말을 배우지 못하고 새로운 사랑에 빠질 수 없다는 회의감. 어쩜 그래서 우리의 언어는 항상 구식일 수밖에. 지금-여기의 노래조차 구식 언어로 기록하다니.

그래서 이 글도 구식으로 끝내기.

카프카가 말했던 것처럼 무한히 많은 희망이 있지만 단지 그것은 우리를 위한 희망이 아닌 것이다. 이 문장엔 참으로 카프카의 희망이 담겨 있다. 그것이 그의 빛나는 명랑성의 원천인 것이다.

발터 벤야민, 「좌절한 자의 순수성과 아름다움」, 1938.6.12.의 편지 중

추신.

글에 나오는 우리는 저입니다. 우리는 함께 장흥을 다녀왔지만 이 글은 제가 쓰고 있기 때문입니다. 어떤 곳은 가고 어떤 곳은 가지 않는 답사지의 선택이 정치적일 수 밖에 없듯이 우리가 다녀온 장흥에 대한 기억도 서로 갈릴 것입니다. 그래서 글도 이 사족도 조심스런 마음 가득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장흥에서 부른 노래와 들은 노래의 기억은 쉽게 잊혀지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저는 압니다. 오만이라구요? 그렇지 않을까요, 우리.

한재섭 전남대 문화전문대학원 문화학과 박사과정

안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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