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응에 다녀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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찍고 쓰는 디카시 특강을 마치고

최 광 임(시인 ․ 디카시 주간)

지난 토요일 전남 장흥 송산마을 ‘문화공간 오래된 숲’에서 79세 이상 되신 어르신들과 중학생 그리고 중장년 ‘장흥문화공작소’ 선생님들과 디카시 창작수업을 했습니다. 어르신들은 황희영 선생님과 함께 시 창작 수업을 하는 분들이셨고 중학생들은 문충선 선생님과 마을신문을 제작하는 학생기자단이었습니다. 세상 높은 곳을 바라보면 부패와 악행이 도를 넘어 우리를 분노케 하지만 또 한편에서는 저마다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일을 하며 사는 멋진 분들이 넘쳐나는 세상이기도 합니다.

‘디카詩’는 디지털카메라(디카)와 시(詩)의 합성어입니다. 디지털카메라로 자연이나 사물에서 시적 정서를 포착하여 찍은 영상(사진)과 5행 이내의 문자로 표현한 시를 말합니다. ‘실시간으로 소통하는 디지털 시대의 새로운 문학 장르로, 언어 예술이라는 기존 시의 범주를 확장하여 영상과 문자를 하나의 텍스트로 결합한 멀티 언어 예술’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디카시의 특징은 식자성이 있는 사람이면 누구나 쓸 수 있습니다. 2018년에는 중고등학교 국어 교과서, 2019년 올해는 창비 국어 교과서에도 디카시가 실렸습니다. 올 6월엔 고2 국어 전국연합 모의고사에도 디카시가 출제되었습니다.

제2회 오장환디카시신인문학상 수상작

또 ‘오장환디카시신인문학상’ ‘경남하동국제이병주디카시공모전’ ‘양평황순원디카시공모전’ 등 각 지역에서 디카시공모전을 시행하여 지역 홍보와 문화관광 상품 역학을 톡톡히 하고 있는가 하면 ‘중국대학생한글디카시공모전’ 인도네시아 주재 한국문화원에서는 ‘인도네시아한글디카시공모전’을 시행하고 있습니다. 디카시가 ‘한글’을 세계에 알리는 역할을 하며 문학한류를 주도하고 있을 만큼 4차 산업혁명 시대 디카시는 새로운 문화예술의 어젠다일 뿐 아니라 일상의 시놀이로 자리매김했다 할 수 있습니다.

특히, 한국인의 스마트폰 사용률이 91%에 달하고 60대 이상의 사용률도 74%를 육박하며 한국인 절반이 소셜미디어를 사용한다는 시대에 스마트폰을 활용하여 찍고 쓰는 ‘디카시’는 남녀노소 구분 없이 우리 일상의 삶에 풍요로움을 선사할 수 있는 최적의 문화 콘텐츠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우리에게 필요한 자질은 ‘융합’과 ‘통합’이란 창의적 활동입니다. 학생들에게는 스마트폰이 자칫 게임에만 몰두하는 기기로 전락할 수 있는 염려를 벗어나 디카시 창작놀이를 통해 창의력은 물론 사고력과 관찰력을 향상할 수 있는 최적의 교육용 디지털 매체가 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무엇보다 시를 창작함으로써 배양될 정서의 풍부함은 돈으로도 환산할 수 없는 자산이 될 것이라 봅니다.

오래된 숲, 디카시 수업 전경

이번 장흥 디카시 창작 수업은 독특했습니다. 그동안 학생, 대학생, 선생님, 일반인, 직장인 등을 대상으로 디카시 강의를 했는데요. 갈수록 대상의 폭이 넓어지는 중입니다. 한 번은 초중고생들을 모아놓고 수업을 하는데도 다른 수업보다는 디카시 수업은 좀 수월하다 싶었습니다. 글쎄, 이번엔 15세부터 79세 이상이 동시에 수업을 했습니다. 수업의 난이도 조절이 관건인데요. 가능하더라는 거죠. 그중 어르신과 학생의 디카시 한 편씩 소개합니다.

79세 정점남 할머니가 마당을 어슬렁거리셨습니다. 잠시 후 오셔서는 “슨상님? 나는 이것을 찍고 자프요” 하시는 겁니다. 제가 따라가 사진을 찍고 말을 걸었습니다. 말씀하시던 중 디카시가 쑥 나오지 뭡니까? 그대로 받아 적어 메일에 넣었습니다. 디카시 쓰기 첫 시간이었으므로 할머니는 아직 사진을 찍고 메일을 보낼 수 있는 상황이 안 되었으니요. 우리는 잠시 후 메일을 열어 다함께 디카시를 읽었습니다.

정점남 할머니는 할아버지와 사이가 참 좋았다 하십니다. 제가 살짝 여쭈었습니다. 할아버지가 저 바작에 할머니를 태워주신 적 있느냐고요. 지게 바작에 태워주신 적은 없다는 말까지 곁들이면서도 이내 눈빛이 아련해지십니다. 영감님 살아생전의 추억들에 아련해지셨던 게지요. 이렇듯 디카시는 5행 이내의 짧은 문장으로 표현하지만 촌철살인 같은 명징함을 드러냅니다. 마음속 언어를 끌어내는 힘이 있지요.

다음은 임민지 학생의 디카시인데요. 대체로 학생들은 글쓰기와 대면할 때 이런 자세이기 마련이죠. 그런데 어찌합니까. 글이 쑥 나와버렸단 말이죠. 임민지 학생의 글이 시가 될 수 있는 대목은 2행입니다. “생각 좀 해봐’라고 툭툭 치니 불이 들어왔다”는 건데요. 두 가지 의미를 지녔다 할 수 있습니다. 진짜로 스탠드에 불이 들어온 것이겠고 또 하나는 ‘생각났다’는 표현을 ‘불이 들어왔다’로 등가시켜 읽을 수 있습니다.

디카시의 또 하나의 특징은 자유시처럼 시적 문장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일상의 언어가 이미지와 만나 서로 보완하는 형식입니다. 문장만 읽었을 때는 별 의미가 발아하지 않을 수 있으며 사진만으로도 의미를 생성하지 않지만 일상의 문장과 사진이 한몸으로 만났을 때 시적 의미가 확장되는 형식이지요. 임민지 학생의 ‘조명’이 그런 예라 할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박연심 할머니가 직접 써오신 시를 소개합니다. 수업 시작하기 전 할머니가 가방에서 주섬주섬 종이를 꺼내십니다. 함께 시쓰기 공부를 해오던 황희영 선생님에게 머시라머시라 하시니 황희영 선생님이 제게 종이 한 장을 건네줍니다. 박연심 할머니가 어제 밤늦게까지 써오신 시라며 제게 낭독을 부탁하시는 겁니다. 제가 시인이라 하니 한 번 보여주고 싶으셨던 거지요. 설명 필요 없이 뭉클하고 큰 감동 그 자체입니다. 같이 감상해보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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